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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식

조선시대 공인중개사 가쾌 역사

어차피 잘 될거야 2019. 2. 14. 16:33

안녕하세요

경제, 건강, 컴퓨터, 역사, 생활 그리고 자동차 상식까지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넓고 얕은 지식의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드리고 있는 너만 성공하자입니다. 이번 상식은 역사상식입니다.


요즘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큰 관심사죠. 부동산은 가격이 뛰어도 걱정이고 떨어져도 걱정이고요. 부동산거래소 를 예전에는 복덕방이라고 불렸는데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조선시대에 부동산과 관련된 역사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조선시대 공인중개사 가쾌



복덕방의 어원은 복과 덕을 가져다 주는 곳이라는 생기복덕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생기복덕이란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그날 그날의 길흉을 따져보는 것이라 하는데요, 여기서 유래한 복덕방이 언제부터 부동산으로 거래하는 곳이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략 조선시대 말이나 대한제국 말 무렵으로 추정합니다. 또 거래를 하려면 중간에서 알선하는 사람이 필요하겠죠. 조선시대 토지와 가옥을 매매하는 사람을 가쾌라고 불렸는데, 순 우리말로는 집주름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집을 사고 파려는 사람들은 집주름 즉, 가쾌에게 중개를 부탁하고 사사로이 매매계약서를 씁니다. 중개수수료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담배 한두 근을 받아서 주변과 이웃에게 나누는 정도가 고작이었다고 하네요.



중개업을 위한 따로 수속이 필요 없었고 그것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도 드물었죠. 그러나 개항이후 한성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지방으로부터 인구가 유입되면서 토지와 가옥의 매매가 급증했습니다. 거래와 매매의 책임이 더 무거워졌고 특정인이 집중적으로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 외국인이 불법적으로 매입하는 것도 막아야 했습니다.



이에 한성부는 1893년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부의 인허제를 맡도록 하고 공증된 매매계약서인 가계를 발급하기 시작합니다. 가쾌는 정부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가옥의 소유상태나 가옥의 이동을 파악하여 매달 2번씩 보고합니다. 동네사정을 훤히 꾀고 있는 가쾌는 지금과는 달리 조선시대 행정업무를 담당하던 공무원 역할까지 했던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